#매국노 #이완용 |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을사오적 우두머리였다!

2020.07.09 연구소장
역사 0 887




#매국노 #친일파 #배신자

1858년 오늘날 경기도 성남시에 몰락한 양반가에서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하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그 아이는 당시 조선왕실과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지내던 이호준이란 사람에게 양자로 입양이 되기에 이른다.
총명한 머리를 가졌던 그 아이의 이름은 바로 훗날 나라와 국가를 배신한 진정한 악마인 이완용이다.

1882년 이완용은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고종의 신임을 듬뿍 받게 된다.
세자였던 순종을 가르치며 사제지간이라는 인연을 만들어갔고 고종의 국제업무일을 담당하며 영어도 배웠다.
당시 이완용은 조선에서 유창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런 능력으로 이완용은 미국주재 공사라는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약 2년 동안 근무하게 된다.
이때 국제관계의 현실과 근대화된 서구열강의 모습을 보면서 이완용은 친미파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고국으로 돌아온 후 '#독립협회' 수장이 되어 활동하였으며, 1898년 전북관찰사로 좌천되었으나 닷세만에 공금횡령과 직무태만으로 독립협회에서 제명되고 관직에서 파직되고 만다.
이후 이완용은 고향에서 칩거생활을 하였으며 1905년, 이완용은 학부대신으로서 일본군 무력시위를 등에 업고 어전회의를 연다.
그리고 이루어진 '#을사늑약'을 고종 대신 이완용 외 4인이 체결하게 된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는 일본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넘긴다는 내용으로 대한제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지구상에서 없애는 것이었다.
고종이 직접 체결한 것이 아니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완용 외 4인 즉, '#을사오적'은 고종을 찾아가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고종에게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에는 기록되어 있다.

“어차피 체결 될 것인데, 외교권을 잠깐 빌려주었다가 나라가 부국해지면 다시 찾아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나라의 외교권은 줄 수 없다!”
“고집부리지 마시고 체결하세요. 그리고 그만 퇴위하시고 순종을 왕으로 올리십쇼.”
“뭐라?!”

민족의 배신자 이완용.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으며 호의호식하던 그는 '#일본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의 총명한 머리와 처세술로 '#이토히로부미'에게 관심을 받으며 우리를 일본의 식민지로 들게 한 그의 변절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해방 후, 1965년에 우리나라 정부와 일본정부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을사늑약이 사실상 '#무효'임을 서로 확인했다.

- BGM
♬ DayDreamSound
Credit : Rafael Krux - Alien Invasion
Credit : Johannes Schroll - Hexxit DRAVE Symphoni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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